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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교정일기

[치아선교정] 교정 중에 사랑니를 뺐다

by 무무의하루 2019.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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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빼는 사랑니인데, 그게 하필 교정 중에 빼야 한다니.

나는 겁을 조금 먹었다. 주변에서 사랑니 발치를 하고 얼굴이 달덩이마냥 부은 사람도 봤고, 몇 날 며칠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사랑니를 발치하러 갔더니 매복이라며 뽑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대학병원으로 올려 보낸 사례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염증이나 충치가 아니면 안뽑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음 진료때까지 사랑니 뽑아오셔야 해요. 하악 왼쪽, 오른쪽 2개요."

 

교정을 하면 생각지 못한 변수가 많이 생긴다. 나는 교정하며 몇 가지 선택을 포기해야 했고, 결정을 보류하기도 했다. 

그래서 교정 초반엔 '괜히 했다'며 후회도 했다가,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으로 어떠한 불편함도, 포기해야 할 것들의 기회비용도 그러려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나는 3급부정교합에 개방교합이다. 악교정 수술을 위해 치아 선교정을 하고 있다. 

교정상담을 할때 담당 치과의사는 "사랑니를 안뽑으신건 잘한 거예요. 어금니 대신 역할을 해주고 있다"라고 했었다.

무서워서 안 뽑은 건데, 치아에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교정하면 뽑으셔야 해요. 발치를 총 3개 할 건데, 상악 1개, 하악 사랑니 2개 이렇게 합니다. 사랑니는 뽑을 시기가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 담당 병원은 교정전문치과라서 그 외의 진료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사랑니 발치를 하고 오라고 하셨다. 얼마나 아프려나. 

 

미션을 받은 나는 며칠 후 동네 치과에 갔다. "사랑니 발치하려고 왔습니다." 

큰 마음을 두번세번 먹고 갔는데, "사랑니에 염증이 있어서 바로 발치하기 어렵습니다. 약 처방해드릴 테니 하루정도 복용한 후에 다시 오세요." 라는게 아닌가. 맙소사. 염증이라니. 치아가 조금 시린 느낌은 있었지만, 염증이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인터넷에 <교정 중 사랑니 발치>를 검색해보니, 매복 사랑니가 아니면 뽑는데 수월하다는 글도, 몇 날 며칠 팅팅 부어 있었다는 후기들도 있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다음 날 다시 내원했다. 

 

"둘 중 어느 쪽부터 뺄까요? 한꺼번에 모두 뽑는 건 무리이고, 오늘 하나, 일주일 후에 하나 이렇게 뺍시다."

그리고 서약서(?) 같은 걸 작성했다. 사랑니 발치를 하면, 턱 감각이 돌아오는데 며칠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염증이 생각보다 깊어요. 많이 아프셨겠어요. 오늘은 염증이 더 심한 오른쪽 사랑니부터 뽑을게요."

"마취할 때 조금 따끔하실 수있어요."

 

마취주사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따끔이 아니라 욱씬한데ㅠ....

교정치료가 힘들어 사랑니 염증의 고통까지 느낄 새가 없었나 보다. 이가 조금 시린 정도였지 사랑니 통증은 별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째 내 치아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나. 

 

마취 주사를 맞고 10분 정도 있자 얼얼해졌다. 때가 된 것이다.

"뽑는 데는 얼마 안 걸려요. 염증 먼저 긁어내겠습니다. 힘 빼시고요. 네, 뽑습니다." 

그렇게 1분도 안돼 사랑니가 빠졌다. 

 

"아프시지는 않죠? 이것 보세요. 사랑니가 굉장히 크고 뿌리가 깊죠?"

치과 선생님이 방금 내 치아에서 뽑힌 사랑니를 보여주셨다. 치아의 뿌리가 그렇게 깊다는 걸 처음 알았고, 빠진 치아를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사랑니 뽑고 매우 고통스러워했는데, 뽑을 때는 정작 아프지 않았다.  

 

사랑니 발치 후 주의사항

'사랑니 뽑을만한데?'라며 자만했던 2시간 전의 나여, 한 치 앞도 못 보는 나란 사람.

마취가 풀리자 고통이 쓰나미로 찾아왔다. 아, 이런 거구나. 얼음찜질을 열심히 해도 신경을 긁어대는 치통에 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가뜩이나 교정 때문에 음식 섭취도 제한적인데, 사랑니 발치까지 하고 나니, 이래저래 신경 쓰여 이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더 슬픈 건, 일주일 후에 한 번 더 뽑아야 한다는 사실뿐ㅠ 

입에 고인 피를 뱉지 말고 삼키는 것도 어려웠고, 양치를 할 때 사랑니 발치 자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도 힘들었다. 중간에 그 부분을 잘못 건드려 피가 막 나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다음날 치과에 소독하러 갔더니 그래도 피딱지가 잘 생겼다고 곧 아물 거 같다고 하셨다.

 

대망의 일주일 후, 나는 왼쪽 사랑니를 뽑으러 치과에 갔다. 

신경과 바짝 붙어있어 조금 아플 수도 있고, 뽑는 게 힘들 수도 있다고 겁을 잔뜩 주셨으나 뽑는 건 대체로 수월했다. 그날도 나는 시름시름 앓아가며 고통을 느꼈다. 양쪽 사라니 자리가 훵한게 혀로 만져지는 움푹 파인 자리가 어색스럽다.

 

있어야 할 치아가 없는 게 정말 어색했고, 사랑니로 주로 저작했던지라 양쪽에 사랑니를 잃고 나니 한동안 어떻게 씹어야 하나 어색했다. 교정 중에는 치열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저작이 참으로 힘들다. 잔뜩 성난 치아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음식 먹는 게 쉽지 않다. 양쪽 사랑니를 뽑고 나서 치열이 더 바뀌면서 나는 오랜만에 교정 초창기처럼 우유에 카스텔라를 찍어먹어야 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치아 교정하며 먹는 즐거움을 잃었고, 교정기로 인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제한되었고, 씹을 수 있는 것들을 조심해서 씹다 보니 흔히 교정인들의 슬픔이라는 '땅콩형 얼굴'이 돼가고 있다. 오, 맙소사. 

 

수술 날은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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