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 입원 중일 때가 행복했다.
나도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올 줄은 몰랐지. 답답한 병실에 누워, 때 되면 진통제며 수액이며 처방받던 그때가 그리워질 줄은.
퇴원 후 첫 날, 그날은 그래도 좋았다. 며칠째 못 감았던 머리도 감고, 짧게나마 샤워도하고, 바깥공기도 쐬니 기분전환도 되는 것이, 역시 집이 최고야! 최고야!!라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못 참겠으면, 웨이퍼 고무줄을 끊으세요." 퇴원을 앞두고 주의사항 설명을 들을때 몇 번이고 강조했던 간호사분의 단호한 표정과 말투가 생각난다. 이것은 전쟁의 서막이다.
병원에서도 크게 붓지 않았던 탓에, 나는 붓기에 대한 공포를 잘 몰랐다. 얼굴이 타오를 것 같은 압의 고통이 끝이 없다는 것도. 얼굴에 멍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나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시간은 안간다. 쭈욱, 안 간다. 망할.
퇴원 후에도 웨이퍼 탈부착을 하기 전까지, 2주동안은 유동식이다. 그러니까 물, 음료수 이런 것들만 마셔야 되는데, 이게 무슨 자양강장제도 아니고 무슨 힘이 있겠나. 그러니 사람들이 이 시기에 살이 쭉쭉 빠진다. 먹는 게 없으니, 몸에 수분이 쫙쫙 빠져나간다.
그래도 병원에선, 먹을 기운도 없고, 먹는 것도 힘드니, 잘 안 챙겨 먹어도 수액을 맞으니 견딜만했는데, 집에선 죽을 맛이다. 기운은 없고 배는 고픈데, 입이 안 벌어져 뭐 하나 마시는 것도 미션이다. 포카리스웨터를 종이컵에 반 잔 따라놓고, 종이컵을 입모양에 맞춰 삼각형으로 구긴 다음에, 웨이퍼로 꽉 묵힌 입안에 넣고자, 고개를 돌리고, 치아의 빈틈을 찾아 조금씩 밀어넣는다. 마시는 것보다 흘리는 게 곱절이고, 이렇게까지해서 마셔야되나 굴욕감도 오지만, 목은 정말 마르고, 나는 그래도 살아야겠고, 그래서 다시 도전. 그렇게 반 잔 마시는데 1시간이 걸린다.
오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턱 수술을 했으니, 당연히 턱은 움직이면 안된다. 위아래 턱을 못 움직이게 꽉 묶어두는데, 치아 사이 맞물리는 역할을 하는 게 웨이퍼다. 그렇게 2주를 말도 할 수 없고, 음식물을 씹어 섭취할 수도 없고, 그래도 살겠다고 뭐라도 마시긴 하는데. 양치를 못한다. 입안에 백태가 끼고, 입냄새가 꺼이꺼이 올라오는데, 양치를 못한다. 양치를. 아...
밤이 되면 그분이 찾아오신다. 얼굴 압이 천장 끝까지 올라가 누워있을 수도 없다. 나는 새벽1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거실을 걷고 또 걸었다. 찬물에 짠 거즈를 얼굴에 올려두고, 울면 안 되는데, 울면 기도가 막힐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그렇게 걷고 또 걷는다. 걷는데, 기운이 없어 잠깐 앉기라도 하려면 또 얼굴 압이 차오르고, 나는 그러면 다시 또 일어나 걷는다.
그렇다고 누울 수도 없다. 얼굴 압이 오르기 때문에, 2주간은 누워자지 말라고 했다. 앉아서 자는 건, 하하하하.... 앉아서 잠을 어떻게 자요?! 그런 순진한 생각은 오만했다. 앉아서 어떻게 잠을 자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파서 잠을 못 잔다 이눔아. 병원에선 최소 2주를 말했지만, 2주 후 괜찮을까 싶어 정자세로 누워 잠을 청했다가 얼굴이 다시 터질 것처럼 부어올라 나는 1달이 넘게 앉아서 잤다. 잤다고 하니 쭈욱 몇 시간을 잔 것 같지만 1시간 눈 좀 부치고 일어나 1시간 걷고 다시 졸고 눈을 뜨고.... 그런 시간이 최소 한 달이 걸렸다.
좀비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붓는다.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할만큼 붓는다. 매일매일 관찰 사진을 찍는데 놀랍게도 조금씩 매일 더 붓는다. 나는 붓지 않는다고, 자만했던 과거의 나요, 이리나와 보시게.
가장 큰 고통은, 웃음이다. 2주간은 되도록 웃지 말라고 했다. 온 입안을 묶어뒀으니 실밥이 터질지 모른다고, 그럼 염증이 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저 머어어어언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니 웃지 말라고.
나는 태어나길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혼자서 피식피식 웃기도 잘하고, 책을 읽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가족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나는 정말 잘 웃는 사람인데, 웃지 말라고 했다. 처음엔, 온몸에 웃음이 메말라버렸다. 고통이 크니까, 너무 아프니까 누가 말을 시키는 것도 짜증나고, 답변이라도 할라치면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야 하는 것도 귀찮고, 텔레비전의 시시껄렁한 농담도 소음처럼 들렸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고통의 기본값이 점차 높아진 탓인지. 어느 날부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이 많은 사람은, 별 거 아닌 일에도 너무 웃겨 울기도 한다. 웃음이 많은 그 사람은, 결국 웃음을 참다참다 웨이퍼를 묶어둔 고무줄을 하나 끊어먹고, 또 웃음을 참다 참다 인중을 묶어둔 실밥이 뜯어졌고, 또 웃음을 참고 참느라 인중을 부여잡고 울었다. 너무 아픈데, 웃기도, 웃긴데 너무 아프고. 아픈데 웃겨서 허벅지를 너무 때렸더니 허벅지에 멍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글도 쓰지만, 당시에 나는 매일매일이 악몽이었다. 죽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왔다. 누가 양악수술을 쉽다고 했나. 수술 그까짓 거, 전신마취보다 더 무서운 수술 후 회복시간이 남아있다. 먹는 게 없으니 화장실도 못 가지, 겨우 화장실을 가서 변기에 앉아있는데 그것마저 어지러워 금방 지치는 나를 보며, 일상이 무너지는 게 어떤 건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몸의 고통이 어떻게 정신을 지배하고,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지 겪어보니 다시 없을 고통의 시간들이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쭉쭉 빠지는 살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매일 생과일을 갈아서 마시고, 적어도 1시간씩 산책을 하고, 잠이 오지 않아도, 엉덩이가 아파와도 앉아 눈을 감고 또 감았다. 이렇게 1시간이 흐르면, 그래도 하루가 될 거고, 하루하루가 모여 2주가 될 거야. 그럼 나도 웨이퍼 지옥에서 탈 출 할 수 있는 거잖아?
고통의 2주, 시간은 더디가도 가는 거니까. 이런 시간을 2주 보냈는데, 웨이퍼 탈부착, 그러니까 그놈은 또 다른 고통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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